초봄이 다가온 듯 잔잔한 바람과 따스한 햇살이 푸근한 1월22일, 양주시 덕정장(2일, 7일)은 날씨만큼이나 풋풋한 사람 냄새로 훈훈했다.

주민들은 장 본 물건을 양손에 바리바리 들고서 시장어귀를 돌고, 상인들은 물건을 하나라도 더 팔고 싶어 목청 터져라 손님을 부른다.

▲ 지금은 경원선 복선전철로 바뀐 덕정역. 덕정시장은 덕정역 앞에 조성되어 있다.

지난 1965년 덕정역 앞에 개설된 덕정시장(공설시장)과 그 시장통에 매 2일과 7일이 끼는 날이면 5일장이 선다. 10여년 전부터는 회천농협부터 덕정중학교 앞까지 상인들이 늘어나 지금은 덕정시장 80여 점포와 150여 상인이 500여m에 이르는 거리에서 5일장 풍습을 이어가고 있다.

여기에 텃밭에서 농사를 짓는 노인들까지 곳곳에 좌판을 틀어 덕정장은 가납장(광적면 가납리 4일, 9일), 신산장(남면 신산리 2일, 7일)과 더불어 양주시 관내에 서는 3대 5일장을 이끌고 있다. 특히 덕정장은 덕정시장, 하나로마트가 함께 공생하며 손님 끄는 매력을 발산한다.

1월26일 설을 맞아 마지막으로 서는 22일 설 대목 장에 상인들은 은근히 기대를 품었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기침체 상황이지만, ‘설은 설’이기 때문이다.

▲ 아직 오전이라 손님들의 발길이 뜸하다.

설 선물과 설 제수용품을 사려는 주민들의 발걸음이 오전에는 뜸했지만 오후 1시부터는 덕정시장통을 드나들기 어려울 정도로 붐볐다.

“무 두개가 단돈 1천원~”
“국산포는 1만원, 수입포는 6천원~”
“잡서봐. 맛없으면 그냥 줄게.”

몸 풀린 상인들이 물을 만난 듯 한껏 손님을 부른다.

“이쁘게 튀야졌어요. 아이들 먹일려고요.”
스스로를 ‘뻥박사’ ‘뻥튀기 챔피언’이라고 자부하는 문정웅(67)씨의 튀밥 차에서 쌀 튀밥을 담아가는 손님이 한마디 했다.

▲ ‘뻥박사’ 문정웅씨가 자신만의 노하우를 설명하고 있다.

문씨는 이번에 처음 덕정장에 왔다. 1987년부터 튀밥 장사를 한 그는 한 때 튀밥기계를 혼자서 5대씩이나 돌렸단다. 성남 모란장에서는 당할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 이제는 기력도 떨어졌고 집에서 쉬느니 ‘즐기는 셈’ 치고 차에 1대만 가져왔다. 그래도 척척이다. 한 번 뻥튀기는데 4천원. 손님이 제법이다. 두 번 튀겼다고 밀로 만든 노란 ‘개나리’ 한봉지를 덤으로 준다.

▲ 서재원씨가 교자상의 먼지를 털어내며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오전 11시경 사각 교자상 하나를 판 서재원(60)씨는 10년 전 이 일을 시작했다.
“설 대목 때는 열댓개도 팔었어. 10년 전 이야기야. 요즘엔 시들시들해. 내일은 마석장 가. 많이 팔아야 할텐데.”
서씨는 오후 2시에 다시 들렀더니 “세개 더 팔았어. 다 보고해야 해?”라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설 대목이어서 회천농협 하나로마트도 쇼핑객이 덩달아 늘었다. 하나로마트 지점장은 “아무래도 설 대목 장이라 바쁘다”고 한마디 하고는 손님들에게 달려간다.

▲ 김순희씨가 흥정을 한 뒤 손님한테 물건값을 받고 있다.

하나로마트 앞에 어렵게 좌판을 튼 김순희(가명·64)씨는 “강원도 홍천 살다 14년 전에 영감하고 덕정동으로 이사 왔다”며 “살기 어려워서 농사 지은 것 들고 가끔 장에 나와 판다”고 말했다. 좌판에는 동부, 마늘, 고사리, 무, 시래기, 팥, 만두가 옹기종기 조금씩 있다.

밤을 까던 김씨는 “오늘은 설 때문에 5만원이나 팔았어”라며 좋아했다.

그래도 겨울인지라 오전에 상인 일부가 모여 뜨끈하고 얼큰한 동태국을 끓여 소주 한 잔을 곁들였다.

▲ 손병열(맨 오른쪽)씨가 동태국을 뜨며 ‘서민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건어물을 파는 손병열(54)씨는 “돈 없어 가게 임대 못하고 나이 들어 취업하기 힘든 사람들이 이렇게 길바닥에서 인연을 맺는 게 진짜 서민의 삶”이라며 소주를 권했다.

상인들은 ‘용산 철거민 참사’가 “남 일 같지 않다”며 “서민들의 실상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단골이 많아 눈코 뜰새 없는 최영범씨.

강아지, 새, 금붕어, 다람쥐, 햄스터 등 애완동물과 애완용품을 파는 최영범씨는 파주, 김포, 통영 등 전국을 누빈다.

10여년 동안 덕정장에 빠지지 않고 와서인지 꽤나 단골이 많다. 겨울에는 동물보다는 용품을 주로 판다.

최영범씨는 “경기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사람은 속는 것에 또 속아요. ‘내일은, 내년은 나아지겠지’ 하고 속으며 장사를 하죠. 이것이 인생이에요”라며 얼굴 주름을 만들며 웃는다.

“오늘은 왜 혼자 나왔어요?” 단골이 찾아와 최씨에게 한마디 건네며 금붕어 먹이를 사간다.

▲ 장을 본 주민들이 덕정시장 입구에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 덕정시장통 끝자락에서 내려다 본 풍경.

▲ 이제는 사라져가는 붓그림 인물화. 옛추억이 물씬 풍기는 광경이다.

시장경영지원센터/취재-유종규(freedomy@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