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살기로 덤벼들었어요. 결국 법을 바꿨습니다.”

사단법인 의정부제일시장번영회 김진권(55) 회장은 ‘회장 사퇴’라는 배수진을 치고 건축법시행령 ‘대지안의 공지기준’ 개정을 위해 뛰었다.

기존 도로에서 3m를 이격하여 주차장을 설치해야 한다는 기준이 현실과 동떨어졌기 때문이다. 김진권 회장의 공약이며, 의정부제일시장 활성화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주차장 증축공사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시행령을 개정해야 했다. 기존 의정부제일시장은 진입 도로와 1.5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나라에서 예산을 지원해줘도 공사를 할 수 없었다.

김 회장은 중소기업청과 손을 잡고 정부를 설득하여 결국 지난해 10월29일 국토해양부로부터 기준완화를 골자로 하는 시행령 개정을 이끌어냈다. 이에 따라 국·도·시비 및 자부담 포함 27억여원을 들여 나·다동 2층 5천616㎡를 3층으로 올리는 주차장 증축공사가 곧 시작된다. 공사가 완료되면 기존 주차대수 274면이 400면으로 늘어나 시민의 쇼핑이 더욱 편리해질 전망이다.

▲김진권 회장(왼쪽)이 2월24일 김문원 의정부시장(오른쪽)에게 주차장 증축공사 등을 설명하고
있다. 의정부시는 이 사진과 함께 이날 '의정부제일시장 모범재래시장으로 우뚝'이라는
보도자료를 언론에 배포했다. 의정부시는 보도자료에서 "경기도 1위, 전국 3위라는
시장경영지원센터 평가결과에 대해 김문원 시장은 '매우 기쁘며, 이는 시설이나 서비스 개선에
기여한 상인들의 노력이 컸다'며 '제일시장이 지역경제 활성화의 선도적인 역할을 해나갈 수
있도록 지원에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시장활성화를 위해 끝없이 생각하고, 옳다고 판단되면 일단 일을 시작했습니다. 처음 회장이 될 때만 해도 빈 점포가 100여개였는데, 지금은 단 한 곳도 없습니다. 좌판을 포함해 670여개 점포가 장사를 하고 있어요.”

일부에서는 ‘독선’으로 비칠 수 있지만, ‘시름시름 앓던’ 제일시장이 김 회장이 번영회장으로 취임한 2005년부터 활력을 찾아 지금은 전국 전통시장에서 ‘벤치마킹의 성지’로 각광받을 만큼 우뚝 섰다.

▲'발상의 전환'을 통해 지난해 '반 아케이드'를 설치한 제일시장. 예산이 상당히 절감됐다.

1954년 9월 의정부시 의정부동 160번지 일대에 조성되어 1976년 4월12일 시장으로 등록된 제일시장은 부지면적 1만5천110㎡, 건물면적 1만7천555㎡, 매장면적 1만1천180㎡에 등록 점포수만 679개에 이르는 경기북부 제일규모의 전통시장이다.

의정부역을 기준으로 동부광장을 지나 중앙로를 건너거나, 의정부지하상가를 통하면 나오는 제일시장은 2008년 한 해만 서귀포시 성산반딧불학당 탐라대학, 성남시장상인회, 서산시상인회 등 전국 500여명이 찾았다. MBC, KBS, SBS 등 지상파는 물론 한국경제TV, 우리방송 등 케이블, 신문 및 잡지 등 언론의 취재도 줄을 이었다.

제일시장은 지난 2007년 2월 중소기업청이 엮은 <달라진 시장 돈버는 상인>이라는 책에서 이미 ‘성공시장’으로 소개될 정도로 기틀을 닦았다. 아케이드 설치, 지하상가 먹거리타운 조성, 시장내 십자로 좌판정비, 주차장 확보, 통일된 간판, 권역별 점포 재배치를 통한 특화구역 개발, 독거노인 김치드리기 등 지역사회와의 유대감 형성, 자체 상인대학 운영 등은 너무 잘 알려진 소개거리다. 

의정부제일시장이 2월24일 중소기업청 시장경영지원센터가 실시한 전국 전통시장 활성화 수준 평가(2008년 6월말 기준)에서 등록 전통시장 1천550곳 중 경기도 1위, 전국 3위를 차지한 것도 결코 우연의 산물은 아니다. 제일시장번영회의 노력과 시장경영지원센터, 의정부시, 경기도 등의 지원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2006년에는 국무총리상까지 받았다.

▲만남의 장소가 된 '장터마당'. 비보이 등 각종 이벤트 무대로도 활용되고 있다.
장터마당 앞에 제일시장 캐릭터가 눈에 띈다. 

2008년 4월15일에는 십자로 좌판을 또다시 재배치하여 생긴 공간에 ‘장터마당’을 개장한 뒤 비보이, 밸리댄스, 고적대, 민요, 마술, 노래자랑, 독도 전시회, 맛자랑 대회 등 매달 이벤트를 개최하여 손님을 끌었다. 추석 때는 인산인해를 이룰 만큼 대성황이었다. 장터마당은 제일시장을 찾는 손님들이 길이 엇갈릴 때 약속하는 만남의 장소가 됐다.

장터마당 개장과 동시에 제일시장 입구와 녹색거리 등에 즐비한 노점상들을 십자로로 흡수했다. 시장과 노점의 ‘공생공존’은 최근 빛을 보고 있다. 떡볶이 등 먹거리촌은 오전부터 손님들이 찾는 명소다.

이같은 시설현대화와 경영개선 등을 통한 시장활성화 내면에는 상인들의 싱싱한 생명력이 숨어 있다. 살아있는 물고기보다 더 생동감 넘친다. 웃음이 절로 나온다.

엄마, 아빠, 오빠, 올케와 함께 시장 서쪽 입구 먹거리촌에서 ‘엔조이’라는 핫도그 전문점을 운영하는 김성숙(32, 왼쪽 사진 가운데)씨는 “불황이요? 그런 거 몰라요. 9년째 장사를 하고 있는데, 요즘에는 너무 잘되요”라며 신나게 말한다.

피자빵과 야채빵, 생과일음료까지 파는데, 오후나 주말에는 손님이 줄을 선다. 이렇게 먹거리촌에 유입된 손님 대부분이 제일시장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정해진 순서.


▲'황금잉어빵' 이재은씨.

지난해 제일시장 앞에서 노점을 하다 먹거리촌으로 온 ‘황금잉어빵’ 주인 이재은(53)씨는 “아무래도 상·하수도와 가스시설이 되어 있고 날씨 영향도 덜받아 좋고, 단속걱정도 없어졌다”며 “전국 제일인 제일시장에 들어온 게 제일 좋다”고 했다.

▲'지혜네' 이인순(왼쪽)씨가 손님에게 물건을 팔고 있다.

3년 전 십자로 좌판정리 때 입점한 생선가게 ‘지혜네’ 주인 이인순(44)씨는 “저녁에 사랑을 덤으로 준비하고, 아침에는 소비자들에게 펑펑 나눠준다”며 “주가는 떨어져도 제일시장 주가는 팍팍 오르고 있다”고 자랑했다. 동태 사면 바지락을 덤으로 주는 등 ‘덤 잘주기’로 소문난 이씨는 상인대학도 이수한 열성파.

▲대한생명 최미경 FC(왼쪽).

매일 아침 제일시장으로 출근하는 대한생명 최미경 FC는 “제일시장 상인들이 있는 한 이곳을 지키겠다”며 ‘화이팅’을 외친다.

▲'광산상회' 윤순노씨.

20년동안 같은 자리에서 야채와 젓갈을 파는 ‘광산상회’ 윤순노(49)씨는 “원산지에서 바로 오기 때문에 대형마트보다 훨씬 싸다”며 “우리 품목은 먹을 때 꼭 필요한 것이어서 정말로 불황이 없다”고 강조했다.

제일시장이 환경개선과 각종 이벤트 등을 통해 활성화되자 매출이 급신장된 곳도 눈에 띈다. 2008년 10월16일 시장경영지원센터가 우수점포로 인증한 한우전문점 ‘인성정육점’이 대표적. 월 3천여만원이던 매출이 제일시장 활성화에 힘 입어 1억여원으로 늘었다는 게 자타가 공인하는 사실이다.

2004년 2월 제일시장번영회에 입사한 고병빈(55) 총무과장은 매일매일 시장을 돌며 상인들과 대화를 나누고, 불만이나 건의사항을 접수하여 번영회에 보고하는 일 등을 하고 있는데, 그가 상인들에게 인사하면 상인들도 웃음으로 화답한다.

▲제일시장번영회 고병빈 총무과장이 반아케이드와 노점상 정비 등에 설명하고 있다.

상인들을 속속들이 꿰뚫고 있는 고병빈 총무과장은 “물론 제일시장 모든 점포가 다 잘되는 것은 아니지만, 노력하면 모두 살 수 있다”며 “상인들의 자신감은 다 이유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잠깐 제일시장을 돌면, 인정 넘치고 살아 숨쉬는 역동성을 느낄 수 있는데 이는 분명 ‘장사가 잘된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일 터.

▲제일시장번영회 김몽구 부회장.

혼수전문점 ‘길성상회’를 운영하는 제일시장번영회 김몽식(64) 부회장은 “대형마트가 싸다는 인식 때문에 소비자들이 습관적으로 마트에서 쇼핑을 하는데, 전통시장보다 결코 싸지 않다”며 “이제는 전통시장도 대형마트를 상대할 수 있는 상품의 질을 높여야 할 때이며, 특히 상인들이 옛날 사고방식을 버리고 유통구조 등 모든 것을 혁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제일시장은 끝없는 혁신을 꾀하고 있다.
2월25일 창립 제55주년 정기총회를 가진 제일시장은 올해 아케이드 교체공사, 각종 이벤트, 주차장과 연계한 엘리베이터 설치, 4개동 냉난방 시설, 고효율 LED 조명설치, 제4회 어린이 전통시장 그림그리기 대회, 제4기 상인대학, 주부 요리강습실 설치, 상인 정보화교육, 마인드 제고를 위한 해외연수, 문화센터(노래·국악교실, 기타) 운영, 우수점포 발굴, 제5회 사랑의 김장담그기, 지역케이블TV 홍보사업, 달리는 광고(택시, 버스 등) 홍보사업, 소상공인 희망대출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지난해 10월 실시한 어린이 전통시장 그림그리기 대회 작품들.

78년부터 남성복전문점 ‘트레디’를 운영하는 김진권 회장은 ‘발상의 전환’을 강조했다. 전시행정과 권위주의라며 사무실에 걸린 역대 회장단 사진을 싹 치워버린 김 회장은 “나이 어린 공무원들에게도 항상 협조를 구하면, 마음이 통해 그 분들의 도움으로 정부 예산을 많이 따올 수 있다”며 “항상 고민하면 답이 나온다”고 말했다.

“동쪽 ‘완전 아케이드’ 설치공사는 14억4천여만원 들었죠. 생각을 바꿔 ‘반 아케이드’로 서·남·북쪽 3면을 설치하고, 덤으로 자동 차양(어닝)과 간판정비까지 하는데 4억5천여만원 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비용도 절감했고, 시각적 효과도 뛰어나 또 다른 명소가 될 겁니다.”  

▲상인교육장은 주민과 상인들의 각종 문화센터로 이용되고 있다. 사진은 금동하 노래교실.


▲제일시장 주차장 입구.


▲상인과 고객들의 편의를 위해 설치한 무인민원발급기와 현금 입출금기.


▲고객을 위해 설치한 쉼터(왼쪽)와 동전을 던지면 물이 솟는 연못. 잉어도 산다.


▲제일시장 옆 녹색거리가 테마거리로 조성된다. 전봇대가 사라지고 편의시설이 설치된다.


시장경영지원센터/취재-유종규(freedomy@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