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20일 새벽녘까지 경기북부지역에 성긴 눈발이 내렸다. 해가 뜨니 거리에는 눈 내린 흔적을 찾기는 어려웠다. 대신 오전 8시10분 소방방재청이 ‘실외활동을 자제하라’며 서울·경기지역에 황사주의보를 내렸다.

기상이 좋지 않은 이날, 조용할 것 같은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시내가 한바탕 소란스럽다. 북과 장구를 두드리는 각설이가 어깨춤을 추며 품바타령을 걸죽하게 뽑고 있다.

임진강이 북·서쪽 경계를 따라 흐르고 임진강변 평야에서 자란 쌀과 강에서 잡힌 황복, 장어, 참게, 숭어는 물론 개성인삼과 장단콩 등이 유명한 곳. 분단 이후 오랜 기간 경의선 종착지가 되었으며(현재는 도라산역), 서울에서 경기 고양시를 거쳐 판문점까지 이어진 1번국도 통일로 최북단에 형성된 인구 3만5천여명의 소도시.

가수 윤도현의 고향이기도 한 문산의 시내 중심가. 경의선 문산역과 버스터미널에서 걸어서 3분여 거리에 있는 문산제일시장이 아케이드 아래 널찍한 광장에 2월19일부터 먹거리촌을 개설했다. 문산제일시장상인회(회장 강석원)가 시장활성화를 꾀한 작품이다.

지난 1964년 문산읍 문산리 10-31번지 일원에 조성되어 현재 부지면적 6천444㎡, 점포수 87개 규모인 문산제일시장은 2006년 인정시장으로 등록됐다. 지난해 5월27일에는 지붕(아케이드), 소방·전기, 간판정비(입구 5개, 가로형 101개, 돌출형 86개), 바닥공사(칼라무늬콘크리트), 방송시설 등 이른바 시설현대화 사업에 착공하여, 6개월만인 11월23일 완공됐다.

통일된 이미지와 잘 정비된 간판 덕에 문산제일시장은 상당히 정돈된 느낌이다.

총사업비 16억원(국비 8억4천, 도비 2억1천, 시비 4억1천, 자부담 1억4천)을 들인 공사가 완료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상인회는 12월18일 준공 기념식을 열었다. 비록 공사기간인 6개월동안 매출이 떨어지긴 했지만, 지금은 시설현대화 덕분에 전체적으로 어둡던 분위기가 산뜻하게 변했고 이미지도 개선됐다.

70년대부터 어머님이 하시던 장사를 15년째 이어오며 무·배추·마늘 등 농산물을 파는 ‘경북상회’ 김상록(55, 왼쪽 사진 모자 쓴 이)씨는 “이전에는 배선이 어지러워 화재위험이 컸고, 슬레이트 지붕이어서 컴컴했는데 지금은 말끔히 해결됐다”며 “지붕을 높여 환기도 잘돼 손님들이 쾌적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환경개선에 성공한 문산제일시장은 그러나 생각보다 품목이 다양하지 못한 게 아쉬운 점이다. 의류, 부식, 음식점, 신발 등 기존 전통시장 역할을 하고는 있지만 생선이나 과일 등이 없고, 딱 떨어지는 전략상품이나 특성도 부족하다.

35년여째 한복전문점인 ‘에덴한복’을 운영하는 강석원(72) 상인회장은 “전략상품 개발과 품목 다양화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석원 회장은 “일부 상인들이 품목이 겹친다는 이유로 불만이 있기는 하지만, 어제(19일)부터 먹거리장터를 운영하는 것도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일”이라며 “고객유치를 위해 여러 사업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산제일시장은 시설현대화 사업 이후 계속해서 고객유치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중소기업청 시장경영지원센터의 지원을 받아 얼마 전 시장내 광장에 대형 스크린과 프로젝터를 설치했다. 현재는 TV를 내보내고 있으나 곧 시장홍보물을 제작하여 상영할 계획이다. 날씨가 좋아지면 영화도 틀고, 월드컵이나 올림픽 등 때에는 스크린 응원전도 추진할 생각이다.

또 이왕에 설치된 방송시설을 이용하여 고객쉼터에 학생들이나 주민들이 노래를 부르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생활 밀착형’ 사업도 벌일 준비를 하고 있다.

지붕을 높이면서 생긴 공간에 널찍한 고객쉼터를 만들었다.
학생과 주민들의 다양한 활동공간으로 거듭날 준비를 하고 있다.

실제로 문산제일시장은 주민들의 생활과 밀착하지 않을 수 없는 주위 여건을 갖추고 있다. 주위에는 호수·주공·장안·청도·한진아파트 등이 형성되어 있고 농협이나 우체국 등 관공서도 즐비하다. 버스터미널이 가까워 교통편이 좋고, 특히 시내 중심가에 있어서 장을 보는 것이 어렵지 않다. 파주LG 엘씨디 산업단지 덕에 인구도 늘고 있다.

문산제일시장 준공 기념식이 열리기 전인 지난해 9월 시내에서 임진각 쪽으로 3㎞쯤 떨어진 곳에 대형 할인마트가 생겼지만, 현재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으로 상인들은 알고 있다. 대형마트가 제일시장 매출에 크게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만큼 시내 터줏대감 노릇을 톡톡히 하며 인근 주민들의 삶과 호흡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산제일시장 광장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과 프로젝터.
광장을 어떻게 활용할지를 놓고 지역주민들이 함께 고심하고 있다.

문산읍에서 센트럴웨딩파크를 운영하는 고성일 대표는 “문산자치위원회에서는 제일시장 광장을 문화쉼터로 운영하자는 의견도 있다”고 말하는 등 ‘생활 밀착형’ 시장운영에 대한 지역사회의 관심이 남다름을 알렸다.

문산제일시장상인회 강석원 회장이 사람 좋게 웃고 있다.

강석원 회장은 “광장 앞에 있는 파주경찰서 문산지구대 자리에 지하주차장을 만들고 지상엔 근린시설을 운영하면 시장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용역 결과가 있다”며 “파주시와 시장경영지원센터에서 관심 갖고 추진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금은 시장 옆에 파주시에서 운영하는 문산2 공영주차장을 이용하면 된다. 2시간까지는 무료다.

17년째 청바지와 세미정장 등 남성캐주얼을 취급해온 ‘자유시간’ 허중호(46, 왼쪽) 사장. 나이를 잊은 듯 맵시 있게 옷을 입은 허 사장은 “손님들이 주인을 보고도 찾아온다. 되도록이면 세련되게 보이려 노력하고 있다”며 웃었다.

“시설현대화도 좋지만 이제는 상인들이 변해야 합니다. 우리 시장은 60~70대 상인이 80% 이상이에요. 연세 드신 분들이 우리 시장의 역사임에는 분명하지만, 이제는 젊은 상인들이 변화를 주도해야 할 때입니다. 젊은 상인들이 앞서서 개인 브랜드를 높이고 역발상 등 마인드를 바꿔 시대흐름에 뒤쳐지지 않는 게 중요하죠. 변하지 않으면 시설현대화도 한계가 있습니다.” 허 사장이 고민을 털어놓았다.

“새로운 모습, 새로운 마음으로 인사드립니다. 문산제일시장을 사랑해주시고 많이 많이 이용해주세요.” 각설이가 상인들을 대변하여 문산제일시장의 ‘진정성’을 목이 터져라 외친다.        



경의선이 오는 6월 성산~문산(40.6㎞)을 잇는 전철로 개통되기 전 오랜만에 추억이 담긴 기차를 타고 봄나들이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인근에 있는 자유의 다리, 평화의 종각, 평화누리 등으로 유명한 임진각관광지와 임진강, 황희 정승이 관직에서 물러나 갈매기를 벗삼아 여생을 보낸 반구정(경기도문화재자료 제12호)과 황희선생영당(경기도기념물 제29호) 등을 둘러보는 것도 좋겠다. 

5일장이 서는 문산제일시장 옆 대로(왼쪽).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파주경찰서 문산지구대.



문산제일시장 서쪽 입구(왼쪽)와 남쪽 입구 인근에서 파주시가 운영하는 공영주차장. 




문산제일시장은 인근 주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시설현대화 사업 이전 모습과 현재를 비교하고 있는 전시사진.

시장경영지원센터/취재-유종규(freedomy@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