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좀 파셨어요?
할머니: 그럼, 팔았지. 냉이 사게?
기자: 필요한 건 샀어요.
할머니: 어디서!
기자: 저기서, 무말랭이요.
할머니: 냉이가 참 좋은데…. 이건 황새냉이, 저건 참냉이. 무 씨락도 괜찮아. 국 끓여 먹으면 맛있어.
기자: 무 씨락이 뭐예요?
할머니: 저거, 무청으로 만든 시래기. 요즘 테레비에서 그러잖아.
기자: 냉이는 직접 캐셨어요?
할머니: 그럼 내가 직접 캐지. 누가 캐주나?
기자: 어디서요?
할머니: 들이고 밭이고 댕기면서.

시나브로 봄이 왔다. 외투가 거추장스럽다. 부드러운 바람도 분다. 저녁엔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가 딱 맞을 것처럼 하늘이 흐리다.

매 2일과 7일 전통 5일장이 들어서는 경기도 양주시 남면 신산시장(공설시장). 3월12일 열린 장은 오래된 시계의 태엽이 느슨하게 풀리듯 단조롭고 한가롭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잘 정비된 아케이드 기둥 한켠에 시장 관리인이 설치한 스피커에서는 ‘오늘이 장서는 날’임을 알리려는 듯 권태로운 풍경을 배경으로 트로트가 쉬지 않고 흘러나온다.

신산시장 관리인인 김성술(72) 할아버지는 “우리 장이 너무 조용해 내가 달았다”며 “이래야 외부에서 장이 선 것을 알 수 있다”고 웃었다. 전북 남원에서 태어나 1967년에 남면 신산리로 이사를 온 김 할아버지는 1973년부터 신산우체국 앞과 장에서 무, 배추 등 부식을 팔아 “아들, 딸 모두 대학에 보냈다.”

“옛날엔 장사가 무척 잘됐고, 군부대에 부식을 납품까지 했으니 좋았지. (연천군) 백학이나 (파주시) 적성에서도 버스를 타고 와서 장을 봤는데, 지금은 동네사람 장사야. 봐 사람이 별로 없잖아.”

김 할아버지는 “여기도 그렇고 적성도 그렇고 다들 할인마트가 생겨서 사람들이 장엘 잘 안 온다”며 “그냥 소일거리 삼아 관리인이 됐는데, 한달에 여섯번 장꾼들한테 장세 받아 남는 돈 15만원을 용돈처럼 쓴다”고 웃었다.

▲신산시장 관리인 김성술 할아버지. 그도 신산장에서 부식을 팔아왔다.

양주시는 남면 신산시장과 회천3동 덕정시장, 광적면 가납시장이 시 소유의 공설시장이어서 해마다 관리인을 공개입찰로 뽑고 있다.

남면 상수리에서 태어나 옆 동네 신산리로 시집 온 홍묘의(75) 할머니는 “장날이면 한번씩 나와 본다”며 “오늘은 날이 풀려서 그런지 사람이 있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옛날엔 갓바위장이 있었는데 오래 전에 이쪽으로 온 것”이라며 “어렸을 때는 무척 사람이 많았다”고 덧붙였다.

▲남면 토박이 홍묘의(오른쪽) 할머니와 신발장수 유하자 할머니가 '사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신발 보러 나왔는데, 마음에 드는 게 없어.” 홍 할머니가 한마디 하자 옆에서 이 말을 들은 신발장수 유하자(70) 할머니는 “그래도 잘 살펴봐요. 신발 많이 있잖아”라고 응수한다.

“전남에서 식당하다 때려치우고 5년 전 장사를 시작한” 유 할머니는 “기자 양반이 신발을 개시해줘야 장사도 잘되고, 장사 잘 된다고 선전해줘야 우리 시장이 더 잘된다”며 남도 특유의 말투로 너스레를 떤다.

2년 전부터 신산장을 찾은 유 할머니는 파주 법원·적성장, 양주 신산·가납·백석장을 5일마다 도는데 “다른 큰 장에는 신발장수들이 있어서 들어가지 못한다”며 “장사가 안되도 자리를 지키는게 장꾼의 도리”라고 말했다.

남면사무소 소재지이자 시내 중심부인 신산리 280-10번지 3천38㎡ 공터에 있는 신산시장은 공식적으로는 1965년 개설됐다고 양주시는 밝히고 있다. 이곳에는 한약재, 곡물, 신발, 옷, 그릇, 꽃, 종자, 야채, 나물, 생선, 뻥튀기, 호떡, 막걸리 등이 손님을 기다린다.

남면이 고향으로 1955년 태어난 이긍주 면장(오른쪽)은 “마트만 있으면 가격이 오를 수 있으니 전통시장도 있고, 슈퍼도 있어서 서로 경쟁하는게 좋다”며 “내가 대여섯살 때 장마당(토박이들은 이렇게 부른다)에 오면 사람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 면장은 “이북에서 친정으로 피란 온 고모님이 장마당 옆에 정착했었는데, 피란 오니 땅이 있나 먹고 살게 있나. 그래서 고모님이 떡장사를 해서 떡 얻어먹는 재미에 자주 장마당에 갔었다”며 “그 때 토끼 가죽, 고무줄, 쌀, 라이터 돌 파는 사람, 뻥튀기 장수, 고무신 구멍 때우는 사람, 돼지기름으로 부침개를 부치며 술을 파는 아주머니들이 기억 나고, 김종규라는 국회의원이 선거 때 연설하던 것도 또렷하게 생각난다”고 회상했다.

세월은 흘러도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것은 바로 인정. 여기저기 서로를 부르며 안부를 묻거나, 도란도란 모여 음식을 먹는 사람들. 이웃사촌처럼 다들 안면이 익은 장꾼들과 동네사람들. 50여 좌판의 단출한 시장이어서 물건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이나 서로 가깝다.

▲여든이 넘은 여순애 할머니는 아직까지 손수 무말랭이를 만든다. 

전쟁 통에 이북에서 피란을 나와 서울에서 살다 43년 전 신산리에 터를 잡은 여순애(82) 할머니는 기자가 무말랭이를 사자 “내가 무 심어서 직접 만든거야”라며 덤을 한 주먹이나 준다. 여 할머니는 통마늘, 들기름, 좁쌀, 튀긴 보리와 옥수수, 마른 밤 등속을 판다.

“젊었을 때야 여기저기 장을 돌아다녔지 지금은 몸이 안좋아 다른 장은 못가. 집이 저기니깐 5일마다 여기서만 장사를 하는데, 많이 못팔아. 주일엔 교회에 가야 하고 비가 오면 또 못나오고 한달에 한 10만원 남나? 오늘은 그래도 날이 푸근해 3만원어치 팔았지. 요즘은 다들 슈퍼 가게 가지 여기꺼정 안와.”

뚜렷한 전통 중심상권이 빈약한 양주시는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2004년 국비와 도비, 시비를 들여 신산시장에 연면적 571.83㎡ 규모의 아케이드를 설치했다. 2006년에도 연면적 496.50㎡의 아케이드를 추가로 설치하고 공중화장실을 신축했다. 돈으로 따지면 10억원이 들어갔다.

▲국비, 도비, 시비 10억원을 들여 설치한 아케이드와 공중화장실.

양주시 산업경제과 김병렬 과장은 “향후 시설현대화 사업을 완료하여 신산시장 이용객을 유도하려 한다”면서도 “우리시 전통시장(신산, 덕정, 가납)은 모두 5일장인 비상설시장으로 활성화 사업 추진에 한계가 있어서, 다른 지역의 활성화된 비상설시장을 벤치마킹하고 상설시장으로의 전환을 검토 중이지만 예산이 부족하다”고 현실적 어려움을 호소했다.

▲과거엔 감자탕을 팔았을 신산시장 인근 선술집. 지금은 빈집으로 남아 있다. 

1398년 조선 태조 13년에 적성현 남면으로 이름 지어진 양주시 남면은 1914년 연천군, 1945년 파주군(지금은 파주시)에 편입되었다가 1946년 다시 양주군(지금은 양주시)에 편입된 곳이다. 양주시 최북단에 있고, 지역 특성상 군부대가 대규모로 주둔하여 개발이 더뎌 인구는 3천여세대 7천여명 수준이다. 덕분에 청정 친환경 지역임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면사무소 소재지인 신산리는 ▲중국 은나라 재상인 이윤(尹)이 낙향하면서 들에 개나리꽃이 만발하였다(신유야화[莘有野花]: 신야[莘野]는 이윤이 농사를 지었다는 곳)는 말에서 따왔다는 설 ▲지청말에 귀신바위 일명 곳갈바위가 있어서 귀신 신(神)자를 써 신산리(神山里)라 했는데, 이것이 신산리(莘山里)로 바뀌었다는 설 ▲앞 산이 마치 섶(신[莘])처럼 생겨 신미·신뫼·신산으로 불리다가 그대로 땅 이름이 되었다는 설 등이 있다.

신산시장은 의정부시를 기준 잡아 3번국도 평화로 동두천시 방향으로 가다 덕정사거리가 나오면 좌회전하고, 은현면을 지나 남면초등학교 앞에서 우회전하여 남면사무소와 남면농협 쪽으로 방향을 틀면 나온다. 경원선전철 의정부시 가능역에서 파주시 적성행 버스를 타도 된다.

인근에는 가평 화악산, 개성 송악산, 과천 관악산, 포천 운악산과 더불어 ‘경기 5악’의 하나로 손꼽히는 감악산이 있고, 감악산 밑에는 신암저수지가 있어 등산객이나 강태공들도 즐길 수 있는 1일 관광코스로 제격이다.

또 서예계의 중진 작가 노정이 마련한 노정서예관(031-866-6006)이 지척이라 서법 예술의 참 맛을 느끼려는 사람들도 두루두루 다녀가기 좋겠다.





시장경영지원센터/취재-유종규(freedomy@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