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월11일 양주별산대놀이마당에서 열린 양주권 통합 찬반 정책토론회는 지역갈등, 지역내 갈등을 예고하는 신호탄이었다.

이 대통령 “행정구역 개편” 촉구

지난 8월15일 이명박 대통령이 8.15경축사에서 “100년 전에 마련한 낡은 행정구역이 지역주의를 심화시키고 효율적인 지역발전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고 있다”고 말한 뒤 행정안전부와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행정구역 개편에 대한 작업이 본격화됐다.

행정안전부는 8월26일 ‘주민이 통합 결정하면 획기적 인센티브’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통해 이른바 ‘자치단체 자율통합 지원계획’을 발표하는 등 선제공격에 나섰다.

행안부는 보도자료에서 “자치단체 경쟁력을 제고하고, 급격한 도시화·고령화 등 환경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행정구역의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자치단체간 통합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면서 의정부·양주·동두천, 남양주·구리, 안양·군포·의왕, 청주·청원 등 10개 지역 25개 시군구를 주요 통합 제기지역으로 손꼽았다.

이어 ▲도시지역은 자치기반 확충과 발전에 필요한 입지 부족, 농촌지역은 인구감소로 지역경제의 활력 저하 ▲광역적 도시행정 수요(광역교통망, 도시계획, 환경 및 자연보전계획 등)와 지역갈등 조정이 필요한 사안(쓰레기소각장, 추모공원, 하수처리장 등)에 대한 적절한 대처가 곤란하며, 확대된 생활·경제권과 행정구역간 불일치로 인해 주민불편과 부담을 초래하고 있기 때문에 자치단체 통합을 추진해야 한다는 논리를 설파하고 있다.

또 ▲좁은 국토를 230개로 잘게 쪼갠 현행 행정구역은 작은 규모 자치단체의 지역발전을 제약하고 ▲국가재정에 의존한 청사 또는 문화·체육시설 신축, 지역축제 증가 등 방만한 예산운용이 나타나며 ▲지자체간 경계를 넘는 광역적 지역발전 사업(새만금, 전북혁신도시 등)에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통합으로 이를 극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양주▪동두천시의회 의원들이 의정부 배제를 합의했다.

한나라당 정치인 움직임 본격화

우리 지역에서는 8월22일 한나라당 정치인들이 양주권 통합 토론회 개최를 위한 첫 모임을 가지면서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이날 모임에 참석한 한 의회 의장은 “이명박 대통령이 추진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나라당이 일사분란하게 의견을 일치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김성수 국회의원(양주·동두천)은 9월11일 고향인 양주시 별산대놀이마당에서 양주권(의정부·양주·동두천) 행정구역 자율통합 찬반 정책토론회를 주최하는 등 발빠르게 움직였다. 그러나 이 자리는 지역갈등, 지역내 갈등이 심화될 것임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고 말았다.

행사장에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일방적 통합 결사반대(양주시리통장연합회)’, ‘3개시 대통합은 우리의 숙명(동두천발전연합회)’, ‘통합만이 살길이다(의정부1동 통장협의회)’ 등의 현수막이 펄럭이며 갈등이 위험수위에 다다를 것임을 예고했다.

김성수 의원측은 김문원 의정부시장과 임충빈 양주시장, 오세창 동두천시장에게 축사를 맡겼으나, 한나라당 김문원 시장 외에 무소속 임충빈 시장과 오세창 시장은 ‘한나라당 국회의원 정책토론회’에 나갈 명분이 없다는 이유 등으로 불참했다. 임 시장과 오 시장은 행정구역 통합 추진에 대해 사실상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 예정에도 없던 한나라당 김상도 의정부갑 운영위원장이 축사에 나서 장시간 통합찬성을 역설하자 양주시민들이 “의정부에 가서 해라”, “연설이 너무 길다”, “우리는 통합 못한다” 등의 야유를 보내며 강하게 항의했다. 임충빈 양주시장을 정점으로, 기관·단체를 골간으로 한 반발 정서가 이미 뿌리 내린 모양새였다.

▲ 임충빈 양주시장이 읍면동 설명회에 참석, 강한 어조로 사실상 통합을 반대하고 있다.

유관단체·시의회 갈등 격화

9월17일에는 3개시의회 의장들이 모여 통합시 명칭과 시청 소재지를 양주시로 하고 동두천지원특별법 제정에 노력하기로 합의했으나, 다음날 의정부시의회가 이를 파기하고 ‘의정부·양주·동두천시 행정구역 통합 건의안’을 단독 제출하자 파문이 확산됐다.

양주·동두천시의회는 9월22일 각각 성명서를 발표하고 “신의를 저버린 의정부와는 통합할 수 없다”며 양주와 동두천만 통합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앞서 양주시는 18일부터 ‘자치단체 자율통합 관련 읍면동 순회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주도권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의정부시도 의정부시의회와 함께 9월28일부터 각 동별 설명회를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일부 의원들의 반발로 무산됐다. 양주시에서는 9월28일 양주권통합반대 범시민추진위원회가 발대식을 갖고 대대적인 여론몰이에 나섰다. 

현재 동두천시에는 ‘동두천특별법 제정 없는 통합반대’ 류의 조건부 통합 현수막이 시내 곳곳을 장악했다. 의정부시에는 통합을 찬성하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그러나 양주시에는 대부분 통합을 반대한다는 현수막이 조직적으로 게첨되고 있다. 지역갈등, 특히 의정부와 양주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현수막을 내건 단체들은 대부분 시 또는 시의회와 교감이 가능한 곳들이다.

우려할 점은 3개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각종 기관이나 유관단체, 시민단체들이 서로 입장을 달리하는 등 지역내 갈등이 표면화되고 있는 상황. 여기에 아직 의견을 정리하지 못한 단체들이나 일반 시민들까지 합세한다면 혼란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정부는 자치단체 통합 결정과정에서 주민의사를 최우선적으로 반영할 계획이라며, 이를 위해 주민투표 등 법적 절차는 물론 필요시 여론조사 등을 실시하고 주민들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객관적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계획에 따르면 2010년 7월1일 통합 자치단체 출범을 목표로 주민·의회·단체장으로부터 9월말까지 통합 건의를 받아 10월초 여론조사, 10월 중순 의회의견 청취, 11월 주민투표 또는 의회 통합 의결, 2010년 1월 이후 통합 자치단체 출범 준비 등의 일정을 짜놓았다. 자체 계획에 따라 장점만을 부각시킨 논리로 밀어붙이기식 추진을 하겠다는 모양새다. 자율통합이 안되면 2014년 강제통합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자칫하다간 심각한 사회갈등을 부채질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정부가 좀더 밀도 높은 정책적 배려와 합리적인 추진계획을 세우지 않는다면 갈등은 장기간 지속되면서 각종 폐해로 확산될 것이며, 설사 통합이 되더라도 이미 표출된 지역갈등이 쉽게 해소되지도 않을 것이란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