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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근 의정부시장이 “태조와 태종이 의정부에서 만난 것은 학자들이 고증한 역사”라고 단정지었다. 실록과 야사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황당한 주장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1월6일 열린 의정부시의회 제339회 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서는 김지호 의원이 김동근 시장을 상대로 지난 9월28일 4억원을 투입한 ‘태조·태종 의정부 행차’ 재현 행사의 문제점에 대해 시정질문을 펼쳤다.
이 자리에서 김 의원은 먼저 역사 왜곡 문제를 다뤘다. 김 의원은 “화합과 화해를 위해 태조와 태종이 의정부에서 만났다는 퍼포먼스를 했는데, 현실적이지 않다. 태조와 태종이 과연 의정부에서 만났는지? 그리고 화합했는지 역사적 왜곡을 하면 학생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 당시에는 의정부라는 명칭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에 김 시장은 “그렇게 정리하면 진짜 역사 왜곡이다. 매우 심각한 문제다. <조선왕조실록> 태종편 10권에 있는 내용을 가지고 구성했다”며 “1405년 11월5일 당시 개경 인근에서 태조가 한양 방면으로 내려간다. 학자들 추정은 파주와 연천을 거쳐 양주로 내려간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달 전인 10월5일 태종은 미리 개경에서 한양으로 간다. 아버지가 머무를 공간을 한양의 창덕궁으로 정했다고 학자들은 보고 있고, 한달간 수리한 다음 아버지를 만나러 북쪽으로 온다”며 “11월6일 양주에서 만났는데, 그렇게 추정하는 하는 것은 전좌마을이라는 명칭 때문이다. 이곳에서 만났을 것이라고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이게 <태종실록> 10권에 정확히 나온다. 거기서 만났을 때 어떤 발언을 했는지까지 실록에 정확하게 나온다. 그런데 아니라고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역사 왜곡 아닌가? 아니라고 하는 분들은 역사 공부 좀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이 “안타깝다. 역사적 왜곡으로 시민들을 호도하지 말라”고 하자, 김 시장은 “이긍익이라는 사람이 백성들에게 구전으로 내려오던 이야기를 정리한 <연려실기술>의 서사적 구조는 상당히 설득력 있기 때문에,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바탕으로 백성들 마음 속에 전해지던 이야기(연려실기술)를 보완해서 전체적인 사실관계의 틀을 잡았다. 학자들과 2년 동안 고증을 거쳐 정리한 사안”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김 의원이 “역사적인 근거는 해석이 달라질 수 있지만, 저 또한 역사학자들과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중요한 것은 의정부에서 태조와 태종이 만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다시 말하자, 김 시장은 “어떤 학자인지 궁금하다. 그분을 만나 무엇을 오류로 삼고 있는지 찾아보겠다. 왜곡하지 말고 역사학자를 소개해 달라”고 응수했다.
김 의원이 “역사 왜곡이다. 도대체 어디서 만났다는 것이냐?”고 묻자, 김 시장은 “역사 왜곡이라고 단정하지 말라. <조선왕조실록>에 몇월 며칠 낱낱이 기록되어 있다. 이걸 왜 인정하지 않나. 매우 중요하다. 세미나와 토론회로 명확하게 하고 싶다. 가장 중요한 근본을 흔들면 안된다. 그 역사학자를 초청해서 세미나를 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태종실록> 10권 태종 5년 11월5일 정유 1번째 기사에는 “태상왕(太上王)이 개성 유후사(開城留後司)에서 출발하였다”고만 나온다.
11월6일 무술 1번째 기사에는 “임금이 태상왕을 옛 견주(見州)에서 맞이하였다. 임금이 숙소에 나아가 헌수(獻壽)하니, 태상왕이 조용히 이르기를, ‘양도(兩都)에 내왕(來往)하여 백성들이 생업을 편히 하지 못하였는데, 이제부터는 한군데 정해 살 수 있겠는가?’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삼가 가르침을 받들겠습니다’ 하고, 이내 모시고 잤다”고 나온다.
11월7일 기해 1번째 기사에는 “태상왕이 노원역(盧原驛) 들에 머무르니, 임금이 따라가서 술잔을 드리고, 모시고 잤다. 내섬시 종 원만(元萬)과 공안부 종 가도지(加都知)에게 쌀 각각 두 섬씩을 내려 주었으니, 원만 등이 아이를 업고, 또 물건을 머리에 이었으므로, 임금이 보고 불쌍히 여겼기 때문이다”고 나온다.
김 시장의 “몇월 며칠 낱낱이 기록되어 있다”는 주장과는 전혀 다르다. 지명 또한 ‘견주’, ‘노원역 들’만 등장할 뿐 ‘의정부’와 ‘전좌마을’은 언급되지 않는다. 태조와 태종이 화해했다는 내용도 거론되지 않는다. ‘전좌마을’이 지금의 의정부 지역이라는 확정적 고증 또한 없다.
김 시장이 <조선왕조실록>과 야사집인 <연려실기술>을 뒤죽박죽 섞은 채 ‘문학적 상상의 스토리텔링’을 정설로 둔갑시키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한 역사학자는 “차라리 의정부, 퇴계원 등지의 민간에 야사로 전해진다거나, 야사집인 <연려실기술>에 전설로 전해진다고 하면 ‘뭐 그럴 수도 있다’고 할텐데, 이걸 학자들에게 고증받은 역사라고 하는 것은 황당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