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공직사회에 청렴과 투명성을 요구한다. 국민 역시 공직자가 법과 원칙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원칙이라도 현실과 동떨어진 제도 위에서는 흔들릴 수 있다.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 원칙을 실천할 수 있는 제도가 먼저 현실적이어야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공무원 출장과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의 각종 회의, 위원회 운영 및 노인정 지원 등에 적용되는 식비 기준이다. 현재 기준은 오랫동안 물가 상승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반면, 외식 물가는 꾸준히 올라 대부분 지역에서 한 끼 식사 비용은 1만원을 넘어섰고, 1만1천~1만2천원 수준이 일반화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예산 기준과 실제 비용 사이에 괴리가 커질수록 현장에서는 어려움이 생긴다. 부족한 금액을 개인이 부담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고, 행사 운영에도 부담이 커진다. 특히 가격 대비 인원을 조정하는 허위 보고가 발생할 수 있다. 이는 공직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 설계의 문제다. 현실과 맞지 않는 기준은 행정의 효율성과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예산은 국민의 세금인 만큼 신중하게 집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나친 절감만을 목표로 현실을 외면해서도 안 된다.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기준은 오히려 행정의 비효율을 키우고, 제도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킬 수 있다.
정부와 국회는 이제 식비 기준을 포함한 각종 행정 경비를 객관적인 물가 지표와 연계해 정기적으로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물가가 변하면 기준도 함께 조정되는 제도가 마련된다면 불필요한 논란을 줄이고 행정의 예측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특혜가 아니다. 공직자가 원칙을 지키며 일할 수 있는 합리적인 제도다. 제도가 현실을 외면하면 원칙은 힘을 잃고, 현실을 반영한 제도 위에서만 원칙은 살아 움직인다. 행정의 신뢰는 거창한 구호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현실을 반영한 작은 제도 개선에서 시작된다.
이제는 예산도 현실을 따라야 한다. 그것이 국민의 신뢰를 지키고, 공직사회의 청렴을 더욱 굳건하게 만드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