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 곁에는 늘 사람이 모인다. 그중에는 잘못을 바로잡아 주는 사람도 있고, 지도자의 마음에 들기 위해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사람도 있다. 문제는 지도자가 누구의 말을 귀담아듣느냐에 있다. 충언은 듣기에 불편하지만 사람을 살리고, 아부는 듣기에 달콤하지만 사람을 병들게 한다.
바른말을 하는 사람은 때로 지도자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다. 그러나 진정으로 조직과 공동체를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할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충언이다.
반면 아부는 다르다. 상대의 잘못을 알면서도 비위를 맞추고, 실수를 보면서도 칭찬하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지도자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 당장은 서로 편할지 모르지만 결국 지도자의 눈과 귀를 가리고 조직의 건전한 판단을 무너뜨린다.
역사를 돌아보면 훌륭한 지도자들은 자신에게 불편한 말도 받아들였다. 반대로 간신과 아첨꾼의 말에 둘러싸인 지도자는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잘못된 판단을 반복하다가 결국 자신과 나라, 조직에 큰 손실을 남겼다.
오늘날도 다르지 않다. 정치든 행정이든 사회단체든 종친회든 조직의 규모와 관계없이 지도자에게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추종자가 아니라 양심을 가지고 옳고 그름을 말해주는 사람이다. 특히 지도자가 자신의 뜻에 반하는 의견을 배척하고 자신을 칭찬하는 사람만 가까이한다면, 그것은 충성스러운 조직이 아니라 위험한 조직이 될 수 있다. 지도자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보다 자신에게 바른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을 곁에 두어야 한다.
아울러 아랫사람도 지도자의 눈치를 보며 아부해서는 안 된다. 당장은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잘못된 판단에 침묵하는 것 역시 공동체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결국 지도자의 품격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신을 칭찬하느냐에 달려 있지 않다. 자신에게 불편한 충언을 얼마나 겸허하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다.
지도자는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하고, 참모는 지도자의 잘못을 바로잡을 용기가 있어야 한다. 이것이 조직을 살리고 공동체를 바른길로 이끄는 최소한의 도리다.
충언을 멀리하고 아부를 가까이하는 지도자는 남이 자신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눈과 귀를 닫아 자신을 해치는 것이다. 오늘 우리 사회의 모든 지도자들이 이 평범하지만 무거운 진리를 한번쯤 되새겨 보았으면 한다.
“듣기 좋은 말보다 옳은 말을 가까이하라. 아부하는 사람보다 충언하는 사람을 귀하게 여겨라.” 그것이 지도자의 덕목이며, 조직과 사회를 바로 세우는 출발점이다. 바른말은 세상을 깨우고, 바른 행동은 세상을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