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고 부르지 못한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홍길동전의 명대사다.
허균은 혁명가다. 신분제 철폐를 꿈꾸며 홍길동을 역사의 전면에 내세웠다. 목표는 ‘적서차별’이었다. 한반도 기득권자들은 신분제를 통해 권력을 유지했다. 권력은 절대 공유할 수 없다는 본능이었다. 씨족혼, 왕실 간 근친상간혼 등등이 그나마 왕건에 의해 결혼연맹체로 확대됐다.
조선은 성리학적 질서 프레임으로 권력을 독점했다. 그 중심에 적서차별이 있었다. 양인 첩의 자식 서자와 천민 첩의 자식 얼자는 권력 불가촉민이었다. 허균은 얼자 홍길동을 통해 평등한 나라 조선을 꿈꿨지만, 소설 속에서도 현실의 벽을 체감하고 아예 율도국을 건국한다. 해피엔딩이다.
현실 속 허균은 어찌 됐을까? 서얼, 기생, 천민 등 차별 없이 어울렸다. 정통 적자인 허균의 자유롭고 정의로운 평등사상은 기득권층을 자극했다. 출처가 불분명한 무신반란 벽서사건을 내란 프레임으로 몰아 신속 재판으로 제거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허균의 죄명은 광해군 탄핵 시도였는데, 정작 광해군 탄핵으로 집권한 능양군과 서인 세력은 끝내 허균을 복권시키지 않았다. 역시 적서차별 철폐는 금기어였다. 300여년이 지나야 법적으로나마 허균의 꿈은 실현됐다.
지방선거가 끝난 지 3개월이 지났다. 인사철이다. 나쁜 지자체장은 공무원을 적서차별로 갈라치기할 수 있다. 곳곳에서 엉겁결에 서얼이 된 공무원들이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허균의 꿈은 아직 미완성인 듯하다. 홍길동전이나 다시 읽어야겠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