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설레며 봉사의 길을 찾아 헤매던 중 보훈도우미 모집에 응시하여 보훈가족이 되었다. 봉사하는 마음도 컸지만 부수적인 수입 또한 생활의 보탬이 되어 항상 즐겁고 뿌듯한 마음이었으며, 정해진 날짜에 나를 손꼽아 기다리는 어르신들을 뵐 때면 즐겁고 보람 있는 나날들이었다.

그러던 중 지난 월요일 어르신 댁을 방문해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안부를 묻고 청소를 하던 중 어르신이 하시는 말씀이 집문서가 없어졌다고 하신다. 너무 충격적인 얘기라 할 말을 잃었다. 잘 찾아보시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어제 아들하고 둘이서 다 찾아봤다고 하셨다. 그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듯 하여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할지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다만 머릿속에 순간 스치는 생각이 어르신과 아드님이 분실의 주인공이 나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라고 한들 믿어줄 분위기도 아니고 한번만 더 꼼꼼히 찾아보시라고 말씀을 드리고 하던 일을 마무리 지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왔는데 오후 일도 손에 잡히지가 않고 잠도 이룰 수가 없었다. 빨리 집문서를 찾아야 누명을 벗을 텐데 정말 나오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도우미 생활을 하면서 어르신들께 누가될까봐 물 한 모금, 커피 한 잔도 함부로 마시지 않았는데 이런 오해를 받으면서 까지 불편하게 봉사해야하는 내 직업에 대해 회의를 느끼기도 하였다.

그래도 어르신이 걱정이 되어 다음날 다시 전화를 드려 집문서에 대하여 여쭤보니 새로 만들려고 알아보는 중이라고 하셨다. 고민과 괴로움의 힘든 하루가 또 흐르고 다시 전화를 드려 여쭤보니 다행이도 작은방 손닿지 않는 곳에 잘 있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억울함과 서러움의 마음보다 찾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어르신께 왜 전화라도 한 통 주시질 않았냐고 묻자 말씀을 잘 못하시며 내게 굉장히 미안한 마음만 가지고 말을 돌리고 있으셨다. 요즘 들어 부쩍 건망증이 심해지셔서 걱정이 많이 되기는 하지만 그날 어르신과의 통화 때 진심어린 마음을 이해하면서 앞으로는 내가 더욱더 신경 쓰고 더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일이든 상대방과의 신뢰가 중요하겠지만 보훈도우미 업무는 더욱 그러한 것 같다. 한 순간의 오해와 의심으로 마음의 상처를 받긴 하였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어르신과 나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끈으로 연결이 되었다. 전화위복(轉禍爲福)이 이런 게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