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는 김가다가 건네주는 우유잔을 받다말고 깜짝 놀래며 말했다.
“어머? 눈가에 웬 이슬이 촉촉하죠? 아침부터 뭐 슬픈 추억 생각났어요? 죽은 명희가 또 생각났어요? 그 첫사랑의 환영은 언제쯤이나 당신의 가슴에서 사라질까?”
“명희는! 갑자기 소설속의 주인공이 생각나서 감동먹었나봐. 내가 썼으면서도 주인공은 가끔씩 나를 감동시키니까.”
마누라와 함께 가게로 출근하면서 김가다는 계절이 이러구러 가을로 접어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그는 요즘들어 부쩍 가슴이 답답하고 사는 재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조금전 신문에서 석탄가루와 땀으로 범벅이 된 손학규씨의 이야기를 읽고 모처럼 커다란 얼음덩어리가 타는 듯한 가슴을 식혀주고 지나간 느낌이어서 참 다행스러웠다.
그는 해외 첨단기업으로부터 110여건에 달하는 계약을 체결했고 141억달러의 엄청난 투자를 유치했을 뿐만 아니라 일자리가 없어 목이 타는 8만여 실업자에게 살아가는 보람을 안겨주었고 파주에 LCD단지를 준공했다. 영어체험마을을 과감하게 조성했고 남북을 숨차게 드나들며 북한의 농업현대화 지원사업도 활발하게 벌였다.
급속도로 글로벌화 되어가는 세계를 내다보는 예리한 통찰력과 빛바랜 보수와 진보의 한계를 과감하게 뛰어넘는 결단, 복지부 공무원들이 가장 함께 일하고 싶어하는 장관이었고 한석동씨가 그의 컬럼에서 그를 말했듯이 이념이나 지역, 계층간의 갈등에서도 마음껏 자유롭다. 그가 말했듯이 비록 손학규씨가 고도의 치밀한 함수관계가 깔린 정치적 쇼를 부린다해도 그래도 그와 같은 정치인이 10명만 있어도 살맛나는 세상이 될 것 같다고 김가다도 생각했다.
“영웅이 목마른 시대가 너무도 지루하다...”
고대 정복자 알렉산더를 말 한마디로 물 먹이고도 끄떡도 않고 통나무 집 옆에서 이를 잡고 앉았던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벌건 대낮에도 등불을 들고 사람들이 욱삭거리는 거리를 헤매고 다니며 목청껏 외쳤다.
“어디 사람이 없소? 어디 사람이 없소?”
만약 수천년 전에 그토록 목이 타도록 외치며 사람을 찾아 거리를 누볐던 디오게네스가 한국의 서울에서 환생한다면 그는 뭐라고 외치고 다닐까? 김가다는 씁쓰레한 웃음을 입가에 떠올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디 제대로 나라를 이끌어갈 정치가 한 사람 없는가. 어디 목사다운 목사 한 사람 없는가. 어디 선생다운 선생 한 사람 없는가. 그리고 또 어디 사람, 사람이 없는가. 그러면서 벌건 대낮에도 서울의 거리를 등불을 들고 다니며 사람을 찾아다니겠지.”
그래도 다음 대통령 선거 때는 손꼽아 견주어 볼 만한 인물들이 그리저리 몇 사람이라도 있어 그나마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김가다는 마누라가 적어준 쪽지를 지갑 속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장돌뱅이 행차를 나섰다. 어쨌거나 그날 김가다가 모처럼 기분이 괜찮은 느낌이 드는 것은 그러한 손학규의 업적뿐 아니라 그가 젊은 시절의 김가다와 비슷하게 불의에 항거해서 백난지중의 치열했던 삶을 살았다는 동질감이 들었기 때문인 듯 했다.
“하나님. 오늘도 물건 잃어먹지 않고 무사하게 다녀오도록 지켜주십시오. 저에게 이토록 틀림없는 직장을 갖게 해 주셔서 불망지은으로 참 감사합니다. 그저 늦바람만 나지 않고 툭하면 기차화통 삶아 먹은 듯 버럭버럭 소리지르는 습관 좀 죽이고 전철 속에 물건만 팽개치고 내리지 않으면 마누라에게 퇴출당하거나 쫓겨날 염려는 절대로 없으니까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