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명이 흡혈귀라는 두억시니 닮은 친구가 있다. 그는 광성중학교를 김가다와 함께 졸업하고, 고등학교 2학년까지 아이스하키 선수로 김가다와 함께 명성을 날렸었다. 1966년 H고등학교 아이스하키부와 적절치 못한 사고로 퇴학을 당한 뒤 김가다는 한 경직목사님이 세운 Y고등학교 야간부로 간신히 들어갈 수 있었지만 흡혈귀는 그길로 학업을 끊고 조폭세계로 발을 들여놓고 말았다.
그는 싸움실력은 별로였지만 일단 싸움이 붙었다 하면 떡이 되도록 얻어맞으면서도 기회만 잡히면 표범처럼 날쌔게 상대방의 목을 물고 늘어졌다. 그리고 일단 목을 물었다하면 피가 철철 흘러도 놓지 않는 독종중에 독종이었다. 고등학교 때에도 별명이 흡혈귀로 악명을 날렸었고 조폭세계에서도 흡혈귀란 별명 그대로 이름을 날렸었다. 고등학교를 2학년 때 퇴학당한 이후로 김가다는 흡혈귀를 만나볼 기회가 없었다.
그! 후 바람결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인천 무슨 호텔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에 들어가 3년을 살고 나와서 청계천 일대에서 일수놀이를 하는 사채업자 밑에서 일을 봐주고 있다는 소문도 있었고, 그것도 얼마 못가 때려치우고는 다시 폭력사범으로 감옥에 들어갔다는 소문도 있었다. 흡혈귀에 대한 소문은 주로 광혁이란 친구한테서 얻어듣긴 했어도 그때쯤 김가다는 양주땅 어느 산골에 처박혀 돼지똥과 씨름을 하고 있던터라 더 이상 그에 대한 소식을 몰랐었다.
그러던 1990년 7월 어느날 김가다가 고추밭에서 풋고추를 따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사람을 찾는 소리에 김가다가 고추를 따다말고 현관 앞을 서성이고 있는 낯선 남자에게 다가섰다.
“여기가 김가다씨네 집입니까?‘
“그런데요. 제가 바로...앗! 너, 너는 흡혈귀 정팔이!”
“야, 임마 어떻게 된거냐. 이런 산골에 쳐박혀 살다니.”
“허허허, 살아보니 산골이 속 편하고 진짜 좋더라! 야, 이거 몇 년만이냐. 어떻게 사니?”
“중부시장에서 건어물 장수한다.”
“중부시장에서? 건어물? 네가 장삿꾼을 해?”
“하핫! 먹고살려고 벼라별 짓 다해봐도 되는 게 없더라. 배운 것도 없고 똑 부러진 기술도 없고...게다가 전과자 신세니 뭐...고모부가 좀 도와줘서.”
“그래? 잘됐다 야, 건어물 장수 괜찮지? 빵엔 몇 번이나 들락거렸니?”
“별이 세 개야. 인생이란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죽을 때까지 힘들다는 걸 통렬히 깨달았지.”
김가다는 부랴부랴 막걸리를 한 되 받아와서 오동나무 그늘에 앉아 금방 따온 풋고추랑 된장을 안주삼아 내어놓고 감회어린 얼굴로 그를 반겨했다.
“자, 한잔 들어. 시골 막걸리가 맛이 좋다.”
그런데 흡혈귀는 김가다가 따라주는 술잔을 절반만 베어 마시고는 한사코 마다했다.
“마누라가 죽으면서 유언했어. 제발 술 끊고 하나님 믿으라고.”
“뭐? 마누라가 죽어? 어쩌다가 그랬어?”
“제주도에 놀러갔다가 익사 사고로...그 얘긴 고만두자. 가슴 아픈 사연이 있으니까.”
“그나저나 네가 교회에 나간다니 천지가 개벽할 일이군. 어느 교회 나가냐?”
“너두 잘 알잖아. 우리 고등학교 2년 선배되는 박연길 말야. 그 선배가 목사가 되어 교회를 개척했어. 그 교회 나가기로 했지.”
그날 김가다는 흡혈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저녁 나절 쯤에야 그는 서울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는 그 선배 목사님이 개척한 교회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고 그 교회에서 장로장립까지 받았다. 그리고 교회도 많이 부흥했다는 이야기를 친구들을 통해 자주 들었었다. 그런데 며칠 전 김가다는 흡혈귀에게서 느닷없는 전화를 받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야, 김가다. 돈이 없어 장로 못해먹겠다. 선배 목사님이 미국 가시기 전까지는 신앙생활 하는 것이 너무도 행복했는데 지금 목사님이 온 뒤로는 살맛이 뚝 떨어졌어. 어느 돈 많은 고참장로가 목사님에게 에쿠스 한대를 선물했는데 말야. 목사가 선물받은 에쿠스 자가용 타고 다니는 건 그렇다 치자. 허구헌 날 사모님은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누가 몇백만원짜리 명품 목걸이를 선물했다는 둥 아무개 권사가 명품 핸드백이랑 구두를 선물했다는 둥 입에 나발을 달고 다니는거야. 목사님은 누가 식사대접을 한다 하면 최고급 요릿집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고 교회제직들이랑 함께 회식이라도 하는 자리면 어김없이 부동산투기로 돈 벌었다는 자랑만 늘어놓는데 나같이 돈없는 장로가 그 자리에 앉아있기가 가시방석인거야. 교회 목사고 장로쯤 정도면 이야기 주제가 달라야 하는거 아니냐?”
“그래...”
“며칠 전 고참장로가 내게 하는 말이 내가 장로장립 받았을 때도 아무 것도 한 게 없지 않냐면서 이번 목사님 생일 때 나보고 목사님 부부 성지순례 경비를 책임지라는 거야. 그런데 너두 알다시피 콧구멍만한 건어물 장사 하면서 내가 무슨 여유로 몇백만원을 내어놓냐. 그리고 목사님은 성지순례를 몇 번씩이나 다녀왔는데 또 간다는 것도 납득이 안가고 일반 성도들은 돈이 없어 가고 싶어도 성지순례 꿈도 못 꾸는데 그렇게 가난한 성도들 주머니 쥐어짜서 목사들이 성지순례 가야 하는 이유가 대체 뭐냐? 요즘 같아선 교회다닐 생각 넌덜머리가 난다. 난 왜 이렇게 평생 가난하게만 살아야 하냐아!”
그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김가다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목사가 복음에 대한 열정이 없으면 이미 목사자격이 없는거지. 그리고 가난도 어느 의미에선 축복일 수도 있단다.”
“이봐 김가다. 목사가 에쿠스 타고 다니면서 전도할 수 있냐? 전도는커녕 다니던 사람들도 돌아서서 욕하고 침뱉고 나가더라. 우리 교회는 돈많은 사람만 행세하는 교회야. 가난한 사람은 주눅이 들어 못견딘다.”
“글쎄다. 우리 교회는 양주 땅에서 제일 큰 교회지만 목사님은 10년이 넘도록 낡아빠진 교회 봉고차만 타고 불철주야 동서남북으로 복음을 전하러 뛰어 다니시니깐 뭐.”
“야, 김가다. 내가 요즘 제일 무서운 게 하나 있는데 밤이고 낮이고 그놈의 고참장로 모가질 물고 늘어지고 싶어 이를 박박 갈고있는거야. 나 이거 큰일났잖아. 내가 이 나이에 또 사람목을 물어뜯고 빵에 가야겠냐?”
흡혈귀와 전화를 끊고난 다음 김가다는 깊은 한숨을 내 쉬었다.
몇해 전 어느 부활절 연합예배 장소에서였다. 일반성도들은 부활의 기쁨을 손뼉치고 기뻐 찬양하는데 귀빈석에서 가슴에 꽃을 달고 앉아 있는 목사님들은 하나같이 입을 팔자(八字)로 꾹 다물고 근엄하게 앉아 있었다. 상이란 상은 목사님들끼리 죄 나누어 가졌다. 게다가 이어지는 순서에서 느닷없이 정치인들이 나와서 일장 선거유세를 늘어놓느라고 목젖이 빠져라 악을 바락바락 써대고 있었다. 목사들이 정치인들과 연합해서 호가호위하는 꼴은 더욱 가관이었다.
“이다음 부활절에는 가족들을 데리고 산좋고 물좋은 곳을 찾아가서 만물이 새롭게 태동하는 자연을 보면서 부활의 의미를 되새기며 하나님을 찬양해야겠다.”
그렇게 결심했었다. 그나저나 흡혈귀는 참 큰일났다 싶었다. 김가다는 생각다 못해 다시 흡혈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가 허덕지덕 전화를 받았다.
“이 사람아 쇠양배양 남의 모가지 물고 늘어지다 늙다구 다 되어서 빵에 가지 말고 내 살궁리 찾어. 돈 없어도 쌍수를 들어 반기는 교회 얼마든지 있어. 그런데 자네 이빨 그거 어느새 틀니 아냐? 물어봤자 힘도 못쓰겠구먼 뭘. 내 살궁리 찾아 응? 권력이나 재물을 돌처럼 보는 훌륭한 목사님들 얼마든지 많아. 애그...엉터리 목사 만나가지고 늙마에 그게 무슨 꼴이냐. 딱두 허다아! 쯔쯔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