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맺기의 열린 공간, 초록우산 도서관

가능동 ‘우리 아이들’을 키우는 3년지기 마을공동체

11월15일 오후 2시. 의정부 가능초등학교 후문에 있는 초록우산 도서관으로 아이들이 뛰어 들어오더니 왁자하게 떠든다. 도서관에서 떠들다니, 그것도 시끄럽게. 하지만 저지하는 어른은 없다. 약 30분이 지나자 아이들은 일제히 조용해진다. 그리고 단 한 사람만이 큰 소리로 이야기를 한다. 매주 도서관활동가가 진행하는 ‘책 읽어주기’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낭랑하게 들려오는 이야기와 스크린 영상에 집중하고 다른 한 편에서는 중학생 몇 명이 오붓하게 앉아서 자기들만의 이야기를 속삭이고 있다. 여느 도서관에서나 볼 수 있는 문화공간의 여유로운 풍경이었다.

2014년 10월 개관해 올해로 만 3년이 된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의정부마을 도서관은 직원 5명과 도서관활동가 8명, 교육활동가 17명이 가능동 아이들과 함께 이끌어가는 곳이다. 하루에 30~40명 정도의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찾아와서 책을 읽고, 학교에서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누고, 때로는 게임에도 빠져보며 각자 하고 싶은 것을 하다가 학원으로 또는 집으로 간다. 도서관은 자칫 위험한 곳으로 빠질 수 있는 아이들과 항상 마음 졸이며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까지 품은 안전한 장소이자 사랑방 같은 공간이 되었다.

1948년 설립된 초록우산은 어린이의 권리인 ‘보호, 교육, 참여’를 통해 아이들이 행복해지도록 하자는 취지로 현재 전국 70여 곳에서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는 자선단체다.

경기북부지역본부가 의정부에 들어선 이후 지역조사를 통해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가 밀집되어 아이들 밀도가 높은 가능동에 의정부마을 도서관이 자리 잡게 되었다. 예전에는 미군부대 영향으로 인구가 많고 꽤 번화한 곳이었지만 지금은 저녁이 되면 어둡고 한산한 곳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위험에 노출되고, 방과 후 길모퉁이에서 게임을 하거나 험한 곳에 방치된 아이들이 많았다. 가능동에는 무엇보다 안전한 공간과 시스템이 절실했다.

필요의 공간으로서 누구나 편하게, 어떤 식으로든 차별 없이 찾아올 수 있는 도서관이 마련되자 아이들이 오기 시작했고, 그 다음에는 어른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재능나눔에 나선 30~40대 활동가들이 종이접기, 비누만들기, 생태체험과 같은 수업을 진행하고, 때로는 운영위원회가 나서서 신호등 문제와 같은 민원사항도 논의하고, 녹색어머니회와 등교지도를 하는 사회안전망 사업에도 동참했다.

여기에 힘입어 활동가들이 바느질, 홈패션, 천연화장품과 비누, 북바인드 등 성인강좌를 개설, 기대 이상의 좋은 반응이 나왔다. 이렇게 아이들만을 대상으로 했던 도서관은 어른들에게도 열린 공간으로 성장해갔고, 초록우산 도서관은 자선의 장소가 아니라 관계 맺기의 중심이 되어갔다. 어린이재단에서 공간을 마련하고 운영을 하고 있지만, 핵심은 가능동 주민들이었다. 스스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논의하고 활동을 이어가자 동네 전체가 아이들을 보살피게 된 것이다.

초록우산 의정부마을은 처음부터 ‘함께’한 공간이라고 했다. 약 4000권의 책과 책상, 의자 등 도서관에 있는 물품은 모두 기증받아서 꾸미고 다듬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함께 가꾸며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기에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에게 의미는 더 큰 것 같다.

물론 처음부터 분위기가 좋았던 것만은 아니다. 초기에는 와이파이를 제공하니 아이들이 각자 게임에만 빠져 있기도 했고, 또 시간이 지날수록 하지말라는 것이 생기다보니 불편한 일이 늘어났다. 그래서 화요일과 토요일에 함께 보드게임을 하고, 블록도 대여하고, 아이들끼리 동아리를 만들면 지원을 해주기도 했다. 2년 전부터 주변 3개 초등학교 아이들 40여명이 모여 이룬 드림오케스트라는 지난 11월1일 시민들 앞에서 웅장한 협연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은 아이들이 건강하게 놀게 하기 위함이었다.

아이들이 모두 돌아간 시간을 활용하는 주민 동아리도 있다. 직장인들의 어쿠스틱 밴드 조은소리는 한 초등학생과 인연으로 연결되어 토요일마다 밤 8시부터 도서관을 연습실로 사용한다. 이를 인연으로 조은소리는 도서관 행사가 있을 때면 멋진 기타 연주로 분위기를 더욱 풍요롭게 해주는데, 지역에 있는 소외단체들도 찾아가 연주회를 여는 등 재능기부를 통한 봉사활동에 상당히 적극적이라고 한다. 이렇게 가능동 주민들과 맺은 유기적인 관계를 통해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은 이루고자 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을 이루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규태 사회복지사는 “많은 아이들이 찾아오고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지만 길 하나만 건너면 도서관의 존재를 모른다. 지금은 가능동에 국한되어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오는 곳이 되었으면 한다. 마을과 기관의 경계를 완화시켜 아이들의 권리를 위한 곳의 중심이 되었으면 한다”며 도서관의 미래를 이야기했다.

후원금과 봉사활동만으로 운영하는 순수민관기관이기 때문에 자유롭게 마을사업을 진행하면서, 더불어 기관과 관계 맺기를 통해 서로 도움을 주고 협력하기도 한다. 프로그램 자체가 아니라 아이들을 위한 공간, 사람들과 관계 맺기를 하는 공간, 주민들과 공감하고 공동의 책임으로 ‘우리 아이들’을 보호하는 것이 초록우산 의정부마을 도서관의 나눔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