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패자는 항상 비참했다. 고려의 마지막 왕 공양왕은 신하 이성계에 의해 원하지 않은 왕위에 오른 비운의 인물이다. 고려의 마지막 충신인 정몽주가 이방원에 의해 살해당한지 얼마 안 있어 어리석고 덕이 없다는 이유로 강제 퇴출됐다.
승자의 기록인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1393년 태조 2년 9월18일 이성계의 근거지인 동북면 함주에 환왕의 정릉비를 세우며 공양왕의 자질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요(瑤,공양왕)는 혼미(昏迷)한 자질로써 대체(大體)에 어두워서, 간사한 무리를 믿어 쓰고 충직(忠直)한 신하를 내쫓으며, 부녀와 환관(宦官)의 말을 듣고서 전제(田制)의 바른 것을 어지럽히고, 사친(私親)과 근신(近臣)을 임용하여 명기(名器)의 공정함을 문란시키며, 정령(政令)이 일정하지 않아서 국법을 무너뜨리고, 용도가 절차가 없어서 백성의 재물을 해롭게 하며, 여러 소인들의 차츰차츰 헐뜯는 참소를 믿고, 전하(殿下)의 나라를 광복(匡復)시킨 공로는 잊고서 이에 그 재상 정몽주와 더불어 늘 전하를 모함하였습니다.”
즉 요즘 말로 풀이하면 공양왕은 국정농단의 주역이다. 특히 정몽주는 국정농단 최고의 공범이다. 훗날 역사가들은 정몽주를 고려의 마지막 충신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조선의 주체세력들은 그를 역적으로 몰아 살해했다.
실록은 정몽주에 대해서 “몽주(夢周)는 그의 무리로서의 대간(臺諫)에 있는 사람을 몰래 사주(使嗾)하여, 공신(功臣)과 직언(直言)하는 사람에게 죄를 가하려고 죄를 꾸며 법망(法網)에 끌어넣으려는 글을 올려서, 장차 전하(殿下)에게 미치게 하려고 하여 화(禍)가 헤아리지 못할 단계에 있게 되니, 나라 사람들이 분개하고 원망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라고 악평을 늘어놓았다.
정몽주도 조선 건국 당시에는 국정농단의 공범이다. 최근 역사 교과서에 수록될 각종 내용에 논란이 일고 있다. 역사는 당대의 기준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 역사의 판단은 후세의 몫이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