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통일의 주인공인 신라의 발전은 지증왕 시절부터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내물마립간 때 왜의 침략으로 국가적 위기를 고구려의 도움으로 극복했지만 고구려의 간섭을 받았다.
6세기가 되자 신라는 변화를 시도했다. 지증왕은 나라 이름을 ‘신라’로 정하고, 왕의 칭호도 ‘마립간’에서 ‘왕’으로 변경했다. 그는 국가통치체제를 정비했다. 지방통제 강화를 위해 지방행정구역을 주·군으로 나누어 관리를 파견해 국왕의 권한을 강화했고, 이사부 장군을 보내 현재의 울릉도인 우산국을 정복케 했다. 신라의 영향력은 경주 일대에서 경상북도 북부까지 확대됐다.
법흥왕은 신라의 중앙집권체제를 완성한 군주다. 그는 율령 반포와 불교 공인 등 굵직한 업적을 남겼다. 행정관리의 서열이 모호하던 시절에 관등을 17등급으로 나누고 등급별로 복색을 정해 공직 기강을 확립했다. 법흥왕은 병부를 설치하고 군권을 장악하여 남쪽의 우환인 금관가야를 정복해 경상남도 일대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지증왕과 법흥왕이 신라 전성기의 토대를 마련하자, 진흥왕은 신라의 국력을 크게 신장시켰다. 진흥왕은 국가 발전을 위한 인재 양성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화랑도를 국가적 조직으로 발전시켰다. 화랑도가 삼국통일의 선봉장이 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진흥왕의 최대 업적은 한강 유역 확보다. 한강은 예나 지금이나 한반도의 최대 요충지로 삼국 항쟁의 결전장이다. 그는 백제와 전략적 동맹을 통해 한강 유역을 차지했고, 그 여세를 몰아 함경도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신라가 지증왕-법흥왕-진흥왕의 치세가 없었다면 삼국통일의 주인공으로 등극하지 못했을 것이다. 신라의 군주들은 자신들의 시대 요청을 잘 알았고,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대한민국은 한민족 역사에서 가장 번영한 시기다. 하지만 대한민국 대통령들은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자신들의 시대에 충실해 각자의 역할을 다했을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자신의 임기 동안 모든 것을 다 하고자 하는 과욕이 앞서지 않았나 싶다. 역사는 시대 요청에 충실한 지도자를 기억하고 있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