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오늘 개인면담프로그램 주제는 ‘미래를 향한 나’라는 내용이야.”, “민정이는 꿈이 있니?”, “하고 싶은 거나 이루고 싶은 것들 말이지...” 민정이는 한참을 생각하다 “저는 보육교사나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어요.”라고 했다. 다소 예상치 못했던 답변이었다. 다른 대상자들은 ‘생각해 본 적 없어요.’, ‘모르겠어요’. ‘요리사요...’ 라며 평범한 얘기만 했었는데... “왜 보육교사나 사회복지사가 하고 싶니?”, “음.. 그냥 저보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돕고 싶어요.”라고 했다.

대상자 최민정(가명/19세, 여)은 어려서부터 부모와 이모를 오가며 생활하는 등 양육환경의 변화가 잦았고, 초등 4년경 아버지의 사망을 경험하면서 정서적 혼란을 겪기도 했다. 이후 편모의 가정에서 생활했으나 어머니 또한 판매원, 식당 종업원 등으로 일하며 생계를 꾸리고 아버지의 빚을 갚느라 민정이에 대한 관심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어머니와 원룸에서 단둘이 거주했지만, 어머니는 한 달에 2~3회 정도 들르는 정도였고, 언니도 자취해서 가족 간의 정서적 유대는 부족한 편이었다.

“그럼 너의 꿈을 이루려면 지금부터 어떻게 해야 할까?”, 민정이는 주저 없이 “우선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음.. 다음은 자격증을 따고, 대학에도 들어갈 거에요.” 뭔가 똘망똘망한 눈에서 뭔가 결의에 찬 모습이 느껴졌다. 당장 내일이라도 목표를 위해 뛰어들 기세로 말이다.

“우선 8월 시험을 목표로 준비하자.” 민정이는 2017. 11.경 학교생활에 부적응 양상을 보이다 다니던 고등학교를 자퇴해서 2018. 4. 검정고시에 응시할 수 없었다. 혼자서 공부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 의정부꿈드림센터에 가서 검정고시 공부를 하도록 당부했다. 기대가 컸던 걸까? 출석면담을 할 때마다 늘 ‘늦잠을 자다 가지 못했어요.’, ‘감기몸살에 걸려 가지 못했어요.’라며 검정고시 공부를 시작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살고 있던 원룸의 계약 기간 끝나 방을 비운 채 어머니는 지인의 집으로 가고 민정이는 임시방편으로 서울 수유동에 있는 외삼촌의 지하 단칸방으로 옮겼다. 민경이는 의정부에서 생활하기를 원했고, “엄마가 곧 원룸을 마련해 주기로 했어요.”라는 말만 반복했다. 주거가 어떻게 변경될지 몰라 꿈드림센터에 가라고 할 수도 없고,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검정고시 공부 또한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2개월 가까이 흘렀다. 가까스로 어머니가 의정부 소재 원룸을 얻어주어 주거이전을 했고, 2018. 5. 30. 의정부꿈드림센터에 방문해서 검정고시 지원에 대해 안내를 받았다. “민정아, 이제 검정고시가 2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힘들어도 참고한 번에 합격하도록 하자.”며 격려를 했고, 민정이도 고개를 끄덕이며 검정고시 공부에 대한 의지를 보이는 듯했다.

꿈드림센터에 2~3번 정도 출석을 했을까? “지난주에 몇 번 갔니?”, “무슨 과목 공부했어?”라고 묻자, 머리를 숙인 채 피식 웃으며 “한 번도 못 갔어요”, “생리통이 심해서요.”, 그다음 주에 출석해서는 “뭘 잘못 먹었는지 복통에 설사까지 하는 탓에 가지 못했어요.”라며 무기력한 태도로 일관했다.

“민정아,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언제까지 그런 핑계만 대면서 공부를 하지 않을 거야?”라며 호되게 꾸짖기도 하고, “검정고시가 어려운 시험이 아니야, 몇 등 안에 들어야 하는 시험도 아니고, 지금부터라도 준비하면 할 수 있으니까 한번 해 보자.”라고 다독이기도 했다. “네. 선생님” 민정이는 늘 그랬듯이 감정변화가 별로 없었다. 혼을 내도 크게 위축되지 않고, 칭찬해도 그다지 기뻐하지 않는... 그러면서도 대답은 잘하는 아이였다.

하지만 2주도 채 되지 않아 “선생님, 꿈드림센터가 저랑 잘 맞지 않은 것 같아요.”, “모르는 애들하고 함께 있는 것도 좀 불편하고요.” “그냥 혼자서 해 볼게요.”라며 핑계만 늘어놓았다. “혼자서 어떻게 할 건데?”, “올해 1월경에 검정고시 공부하려고 기출문제, 핵심요약집 그런 책들 샀는데 그거하고 유튜브 동영상 같은 거 보면서 해 볼게요.”라고 답했다.

벌써 7월 초가 되었다. 그 무렵 다행히 다른 대상자가 검정고시를 포기하면서 회수한 에듀윌검정고시 동영상강의 및 교재가 있어 민정이에게 남은 기간만이라도 하는 데까지 해 보라며 건네주었다. 출석면담을 할 때마다 학습량 등을 확인했다. “하루 2~3시간 정도 하고 있어요.”, “영어, 수학 과목은 포기했고, 암기과목 위주로 하고 있는데 공부가 잘되지 않아요.”라며 푸념하기 일쑤였다. 학업에 흥미가 없어 학교를 그만둔 아이가 학력을 취득하겠다고 꾸역꾸역이라도 공부하고 있다고 하는 얘기가 참 기특하게 들렸다.

드디어 시험 전날이 되었다. 민정이에게 연락하여 신분증과 수험표 등 준비물 등을 미리 챙기도록 하고, 수험장에 입실시간 20분 전에 도착하도록 거듭 당부했다. 2018. 8. 8. ’18년 2회 검정고시가 치러졌다. 저녁 무렵 전화 연락을 했다.

“민정아, 시험은 봤지?”, 시험 결과보다는 시험에 응시했는지가 먼저 궁금했다. “네. 봤어요.”, “그래. 수고했어.”, “어떻게 가채점은 해 봤어?”라고 묻자, 민정이는 평소와 다르게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총점 420점이 합격인데 418점인 것 같아요.”, “선생님 저 어떡하죠?”, “너무 억울해요.” 민정이가 뭔가에 그렇게 절실한 모습을 보였던 게 처음이라 다소 의아했다. 결과에 그냥 담담할 줄 알았는데... “민정아, 아직 최종답안도 나오지 않았고, 합격 여부도 결정된 게 없으니 기다려 보자.”, “문제오류로 모든 보기가 정답이 될 수도 있어.”라며 애써 흥분을 가라앉혔다. “선생님 정말 그럴 수도 있어요?”, “그럼. 선생님 말대로 결과를 지켜보자.”라며 위로했다.

2018. 8. 27. 검정고시 합격자 발표일이었다. 민정이에게 연락하여 합격 여부를 확인했다. 결과는 평균 60점을 간신히 넘겨 합격했다. 영어, 수학 과목 등은 40점대로 점수가 낮았지만, 암기과목에서 비교적 점수가 높아 겨우 합격할 수 있었다. “민정아, 축하한다.”, “고생 많았어.”라며 연신 칭찬을 해 주었다. 게으름도 피우고 스스로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세상에 공부해서 떨어지는 시험은 있어도 공부를 하지 않고 합격하는 시험은 없지 않은가!’

검정고시 합격발표 이후 편의점, PC방, 음식점 등에 아르바이트하고자 이력서를 제출하고 면접도 봤지만, 번번이 전화 연락을 받지 못했다. “선생님, 아르바이트할 곳도 마땅히 없고, 면접을 봐도 연락이 없어요.”라며 의기소침한 모습을 보였다. “차라리 취업성공패키지를 한 번 신청해 보는 게 어떨까?”, “그게 뭐예요?”라며 관심을 보였다. “너처럼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한테 나라에서 취업을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이야.”, “상담이나 직업심리검사 등을 통해서 너한테 맞는 취업처를 알려주고 원하면 직업훈련도 받을 수 있어.”, “훈련비도 국비로 전액 지원받을 수도 있고...”, “자세한 것은 고용지원센터에 방문해서 상담을 받아봐.”

민정이는 예전처럼 핑계 대지 않고 의정부고용지원센터에서 취업성공패키지를 신청했다. 초기 상담을 마치고 제과제빵에 관심이 있다며 서울 상계동 소재 한솔요리학원에 등록했고, 2019. 3. 27.부터 서울 상계동 소재 한솔요리학원에서 제빵제과 직업훈련 과정에 참여했다. 비록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다며 한 달여 만에 그만두었으나 바로 네일아트 과정으로 변경해서 5. 28.부터 의정부역 인근에 있는 피부미용학원에 다니고 있다.

민정이는 어머니와 언니가 있지만, 지금은 3~4평 남짓한 원룸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다. 무언가를 열심히 한다고 해서 칭찬해 주거나 격려해 주는 사람도 없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해도 누가 혼내거나 잔소리하는 사람도 없다. 시험에 합격하고 취업을 한다 해도 두 팔 벌려 안아주면서 기뻐해 주는 사람도 없다.

‘남들보다 나은 인생을 살고 싶어서요.’라고 얘기하기엔 아직 어린 나이. 민정이는 보호관찰 준수사항 위반으로 3차례 서면경고장을 받았다. 한 때는 보호처분변경을 해야 할지를 고민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보호관찰소에서 하라고 하니 마지못해서 하는 것인지, 자신을 스스로 위해서 하는 것인지는 모른다. 이유야 어떻든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스스로 깨닫는 게 있지 않을까? 기특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시간이 빨리 흘러 5년 후 민정이의 모습을 보고 싶다.